새로운 아트위키를 열었습니다.

한국미술사

(구)아트위키, 한국어판 창작아카이브

목차

1960년대

당시 사회상황

1960년대 한국미술

1970년대

당시 사회상황

1970년대 한국미술

1980년대

당시 사회상황

정치적, 사회적 현실의 격변기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과, 뒤이은 신군부에 의한 쿠데타 등 숨가쁜 고비를 맞고 있었다. 억압과 민주화의 열망이 엇갈리며 긴장상태가 지속되었다.(국민들이 자신의 위치를 되돌아보는 시기가 됨), 학생운동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사회 성격논쟁'은 민중민주주의를 주장하게 됨

  • 국내의 변화는 세계의 정치, 사회변화에서 영향을 받았다.(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정치 이데올로기의 막바지, 제3세계 국가들은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발전을 모색중)
  • 후기 산업사회라는 20세기 후반기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서구중심에서 벗어나 각 국가마다 정체성을 찾으려함

1980년대 한국미술

  • 1960년대 앵포르멜 미술문화 -> 70년대 단색조 모노크롬의 미니멀류로 개량 (60년대 주류 모더니즘 작가군이 작품과 이념을 개량한 것)
  • 80년대 초반까지 모노크롬의 미니멀류는 '국제화된 한국적 미술'로 절정을 이룸 ->리얼리즘 미학을 바탕으로하는 '민중미술'의 싹이 트기 시작
  • 위와 같은 80년대의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현실 고발의 매개로서 현장주의 미술이 탄생하였다. 현장주의 미술은 1980년대 전반의 반체제적 기운과 결속되면서 사회구조의 변혁의 수단으로서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 사회적으로 민주화의 욕구가 강하게 일어난 반면 정치적 빈곤과 억압의 구조가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다는 점과, 아울러 오랫동안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에 의해 주도되었던 미술계 구조에 대한 불만이 만연되어 있었다는 안팎의 모순이 1980년대 한국미술의 급격한 변혁 요인으로 작용했다.

1980년대 미술의 전반적 특징은 '드로잉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 발전', 민주화의 열기와 연대된 '현장주의 미술의 출현', 표현의 회복으로서 '폭넓은 매재의 원용과 실험' 등이다. 또한 이 시기는 현장주의로 대변되는 민중미술은 기존 미술계를 공격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였다. 이에 제도관 미술 vs 민중미술의 갈등 구조가 심해졌던 시기이다. 이같은 대립 구조는 80년대 후반에 들어 다소 무뎌지며, 이 시기엔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가 한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표층을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1980년대 후반은 포스트 모더니즘 vs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 모더니즘 vs 민중미술이란 삼각구도가 형성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이처럼 한국 미술문화는 20세기 후반기 사회 속에서 문화의 한 부분으로 변화하여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이루어낸 사회체제나 문화 이념이 아니라 선진 열강국가들의 사회현상을 모델로하여 휩쓸려, 시대상황의 명확한 인식보다는 외형적 논의만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민중미술

  • 1980년대 민중문화는 문학의 주도하에 이루어짐
  • 민중문화의 역사적 바탕은 1920~30년대의 '리얼리즘론'과 민족문화론' 논의의 연장이었다.
  • 최원식 "...우리 민족의 역사적 운명에 대한 새로운 눈뜸, 다시말해서 강력한 민족적 각성과 연관...4.19를 기점으로...민족주의적 동력이 70년대 문학에 집중적으로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 1980년대 민중미술 문화를 언급하면 대두되는 것 - '한국사회성격 논쟁' : 1980년대 한국의 사회구조에 대하여 전개된 다양한 변혁 논쟁
  • 이 운동은 사회운동권 내에서 정치노선이나 조직노선 또는 투쟁노선으로 논의되다가 1985년경 공개적인 논쟁으로 발전
  • '한국사회'에 대한 본격적이고 과학적인 변혁운동을 해가는 시기


  • 민중미술은1980년, 미술의 소통기능의 회복을 외치면서 현실인식을 이념으로 내세운 '현실과 발언'(이하 현발)의 창립에서 연원된다고 불 수 있다.
  • 현실과 발언(1979년) - 1969년 선언문만 남기고 사라진 '현실'동인의 연장선 에 있음
  • '현실과 발언' 참여 작가로는 - 손장섭, 김경인, 주재환, 김정헌, 임옥상, 심정수, 민정기, 노원희, 백수남, 신경호, 김건희, 오윤이 있으며, 참여 비평가는 원동석, 최민, 성완경, 윤범모가 있다. 대표전시로는 <도시와 시각>전, <행복의 모습>전 등이 있다.

이와는 무관하게 최열은 광주에서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이하 광자협)의 동시적 출발을 주장하며 민중미술의 시작을 두 그룹으로 본다.

  • '광자협'은 사회변혁운동과 조직적 연대, 노동 및 노동현장에 결합하는 미술투쟁 대중 활동을 수행
  • '현발' 창작과 화랑활동을 중심으로하는 미술계 내적 활동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 1982년 '임술년'
  • 1983년 '두렁' *두렁은 작품의 공동 제작을 주장함
  • 1984년 '삶의 미술전'
  • 1985년 '서울미술 공동체' 등 잇따른 후속 그룹이 창립되었고, 전국적으로 유사단체들이 등장하였다.
  • 1985년 '20대의 힘전'을 계기로 한 압수, 구속 사태에 와서 그 절정을 맞이하는 인상을 준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민족미술협의회]가 창립되면서 결속력이 강화되었다.

민중미술계의 젊은 세대층은 미술의 민주화를 위한 수단으로 시민미술학교, 민속교실, 판화교실, 대중판화 연구소와 같은 기구들을 운영했다. 또한 새로운 장르로서 깃발그림, 걸개그림, 이야기그림, 그림놀이 등을 개발, 발표했다. 민중에 접근하는 미술 외적 시도로서 탈춤, 마당극, 풍물, 굿 등을 적극 활용했다.

  • 1985년 민중미술은 '민족미술협의회'를 발족시키면서, 결속력을 강화했고 민중이라는 단어를 민족으로 개칭하면서 '민족통일'을 이념적 주제로서 표방했다.
  • 1980년대 후반부로 들어서는 모험적 진보사상의 젊은 그룹의 과격한 노선으로 인해 내부갈등을 겪기도 했다.

1980년대 등장한 민중미술의 활동은 다양한 매체의 실험과 기존의 갖힌 미술계를 벗어나 미술의 민주화를 적극 시도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가 하면, 지나친 메시지 위주와 미술의 도구화라는 부정적 평가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강한 추진력에 비해 예술작품으로서의 형식적 요건들을 갖추지 못하여 자칫 미술의 저질화를 초래할지모른다는 인상도 심어주었다.

  • 민중미술은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 미술' 미술의 생산과 수용을 동일한 민중의 주체에서 합치하려는 것

새로운 미술물결에 대처하기 보다는 국내 미술권 내 주도권 쟁탈과 사회변혁에의 종사로서 흐르고, 미술문화의 대안세력으로 자리잡는 데는 실패함 -> 젊은 작가들의 '포스트모더니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

20세기 후반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산업화 사회의 구조를 넘어 새로운 사회구조를 요구 -> 정보화된 사회구조 '후기 산업사회' -> 후기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문화현상 '포스트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당시 학자들마다 전망과 관점이 달랐으나 비슷한 양상의 논의도 보임
  • (비슷한 양상으로)모더니즘에 대한 반발, 후기 양식으로 이어져 나가는 것, 끝없는 기계적 복제로 인한 독창성의 소멸과 예술의 순수성 부인, 고급과 저급 예술의 구분 모호, 쾌락과 즉흥성의 중시, 독자적 영역이나 양식의 와해, 정보매체에서 주는 현실과 비현실의 모호성 등
  • 우리에게는 세계적 흐름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유입해야 하는 절박함
  • 국내 유입되어 논의되기 시작한것은 '문학' - 대표적 논의자 : 김욱동, 정정호, 강내희 등 -> 국내 미술문화에서 활성화 '80년대 후반기'
  • 당시 경직된 미술문화내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돌파구
  • '제도권 미술과 민중미술의 대립구조'가 형성, 심화되던 1980년대에 국내에 탈모던적 성격을 갖은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다원주의가 미술계 한편에서 젊은 층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 포스트모더니즘의 증후는 1970년대 후반부터 암시적으로 나타났으나 뚜렷한 양상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 이들은 평면과 입체에만 머물지 않고 일회적인 성격의 인스톨레이션과 퍼포먼스 등을 활용했다. 이는 기존 미술형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허무는 적극성을 드러냈다. 탈장르화 현상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 1985년 탈모던 성격의 그룹인 '난지도, 메타복스'의 등장이 이를 알린다.
    • 이들은 모더니즘의 극복과 새로운 이미지를 제안하는 것을 주요 전략으로 삼음, 탈모던과 포스트모던은 다르며 포스트모더니즘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이 두 그룹을 포스트모더니즘 그룹으로 볼수도 있고 안 볼수도 있다.
  •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주요 전시로는 - '물의 신세대전, 엑소더스전, 해방전, 한국 현대미술의 최전선전, 포스트 모더니즘에 있어서 물질과 정신전, 겨울대성리전 등이 있다.
    • 1981년 열린 '겨울 대성리전'은 닫힌 전시공간을 벗어나 열린 공간을 지향한 야외발표장 형식의 야외전시이다.
  • '사실과 현실', '시각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 일상적 일루전의 작업과 상황에 대한 새로운 인식체제는 후기 산업사회의 내면적 풍경을 추구해 주었다.
    • 이러한 경향의 작업을 한 작가로는 - 이석주, 주태석, 고영훈, 지석철, 한만영, 김홍주, 안병석, 한운성 등이 있다.
    • 이들보다 현실적인 인간의 상황을 표명해 주는 작가로는 - 황주리, 유연희, 오원배, 권순철, 이은산, 정일, 김용철, 김영원, 도학희, 유인 등이 있다.
    • 물질 실험을 한 작가로는 - 그룹 '난지도', '메타복스' 멤버들과 하용석, 정덕영, 박은수, 양주혜, 문범, 김관수, 김수자, 김성배, 조성무 등이 있다.

비디오아트는 1984년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우주중계와 잇따른 국내전시로 크게 자극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까지 일부 젊은 작가들에 의한 비디오아트는 수준면에서 미약하다.

추상표현적 경향

추상표현적 경향은 1980년대 후반 다시 강한 추세를 보였다. 이들은 1960년대 추상표현주의에서 출발하거나 그 영향을 크게 받았다는 면에서 추상표현주의의 후기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대표작가로는

  • 색면 추상 - 유희영, 장화진, 윤형재
  • 기하학적 패턴 구성 중심의 추상 - 김태호, 이형우, 김희성, 김진영, 김재권, 하동철, 우제길, 윤미란, 이태현 등이 있다.
0000년 태어남  1957년 태어남  1980년 태어남  1981년 태어남  1983년 태어남  1985년 태어남  1986년 태어남  1987년 태어남  2002년 열린 전시  2003년 열린 전시  2005년 열린 전시  2007년 열린 전시  2008년 열린 전시  2010년 열린 전시  2011년  2011년 열린 전시  2012년  2012년 열린 전시  2013년 열린 전시  4월  9월  개인전  개인전프로젝트  개인전프로젝트/2012  개인전프로젝트/2013  개최년도별 전시  갤러리  거주지별 인물  경기거주  경복궁인근  관리용  광주  교육기관  국립  국립/공립/사립  국민대  국민대/회화전공  국민아트갤러리  그룹전  그림재료  기법  기타재료  김도명  까페갤러리  날짜  뉴욕거주  달력에 관한 틀  대림미술관  대문  대안공간  대학  대학교  대학전시  대학행사  도구  도움말  동덕아트갤러리  레이아웃  레지던시  리플렛  목록  문화공간  미국거주  미술관  미술학부  미학자  박물관  복합문화공간  복합문화공간 에무  부산  비평가  사립  사이트  삭제요청인물을 포함한 문서  서울  서울거주  아트맵  아트선재센터  아트위키  아티스트  안현숙  어휘  엑셀VBA  요기가표현갤러리  용어  운영주체별 장소  유형별 장소  인물  인천거주  작가의 지역  장소  재료  전시  전시소식  조각  조소재료  졸업전시  주요뉴스  지역  지역별 장소  직업별 인물  참여인원별 전시  창작용어사전  창작인  출생년별 인물  큐레이터  특수 효과용 틀    페인팅  평론  플레이스막  학술제  학술행사  홍대인근  홍익대  활동 지역  활용장르명  회화  회화전공  효과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