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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철이
깨철이는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입체미술전공 98, 99학번 재학생이 만든 조형물의 애칭이다. 목재 합판에 타카를 이용하여 이어붙여 제작했다. 마치 꿰멘 듯한 타카심 자국으로 인해 "깨철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깨철이라는 이름은 98학번의 문학적 소양에 기초하여 붙여진 이름이다.[1] 총 2개의 깨철이가 있는데 깨철이1은 1998년 국민대학교 미술학부의 첫 전시였던 <제 1회 과제전> 당시 만들었으며, 깨철이2는 1999년 10월, 1회 예술제 때 99학번 재학생들이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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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입체미술전공 98학번이 만든 깨철이1
- 99학번이 만든 깨철이2
깨철이에 대한 증언
자유인(自由人) 깨철이[2]
결론적으로 깨철이라는 이름이 조형물의 애칭으로 불리워지게 된 것은 타카심을 깨알같이 박아놔서가 아니라 98학번들의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소양에 기초함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깨철이라는 이름은 소설가 이문열이 1982년에 발표한 <익명의 섬>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98년. 시대적으로 인터넷이란 것의 초창기쯤으로 기억되는 그 시기.
대학교양과정에 컴퓨터기초가 2학점 수업으로 개정되어 있었고, 컴터 수업이긴 했지만 워드보다는 손수 써내려간 친필 레포트가 학점받기에 더 좋았던 그때.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처럼.... 이문열이라는 작가의 소설들은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 시대적으로 큰 반향을 이르킬 때였지요.
거장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안개마을>의 원작이기도한 이 소설에 등장하는 시골마을은 1998년의 시대상과 참 유사했구요, 신생대학이 생긴 국민대의 모습과 비슷했어요. 그 속에서 깨철이라는 인물이 자신의 존재를 익명성에 매몰시킴으로써 자기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방식은 참 아이러니한 한편의 불랙코메디가 아닐 수 없었지만, 마을 여성들의 성적해우소(解憂所)로써 엄연히 실재하지만 자신을 비롯한 모두에 의하여 부인되는 존재, 깨철이의 배경에는 제도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작금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듯 했어요.
신생학과의 탄생비화가 정치적이었든, 필요에 의해서였든,
재미있는 것은 <깨철이>의 이러한 역할을 마을 사람들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점, 현실이야 어떻든 관념 속에서, 당사자인 아내들도 그녀들의 남편들도 해우소(解憂所)로서의 <깨철이>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아내들은 죄의식 없이 억압된 성으로부터 해방되고 남편들은 그를 묵인함으로써 평화로운 가정을 유지한다는 점이 당시 구성원들이 저희 학부를 대하는 모습과 참 유사했어요.
당시 조형대 앞에 이 조형물을 세웠는데요, 국민대 구성원들은 이 조형물을 조형대학생들이 만든 줄 알고 있었구요, 그런 찬사를 굳이 “우리가 한게 아니고 옥상가건물에 세들어 사는 예술대학 1학년신입생들이한거야” 라고 부정하지 않았어요. 조형대 홈페이지에도 이미지가 실렸죠! 누가 만들었는지 그 출처를 밝히지 않은체! ^^
역설적이게도, 깨철이는 소설에 등장하는 ‘익명’의 존재처럼 그 마을에 있어서 균형이자 질서였습니다.
이렇듯 깨철이라는 조형물의 이름은 당시 98학번들의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낭만적 성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관심갖지 않은 이들은 전혀 몰랐을 생생한 비화였습니다 . 하하
역사
- 1998년 9월 14일 깨철이가 국민대학교 <제 1회 과제전>에서 첫 모습을 선보였다.
- 1999년 10월 18일 제 1회 예술제]에서 두 번째 깨철이(깨철이2)가 등장했다.
- 2000년 봄, 축제 때 경상대학 재학생들과 미술학부 재학생의 다툼이 있었는데 당시에 경상대학 재학생이 깨철이2의 얼굴을 가격했다.
- 2000년 깨철이2 철거(정확한 때는 알 수 없지만 2001년 입학생은 못 봤다고 한다.[3]
- 2001년 봄, 축제에 여지없이 깨철이가 만취한 학생으로부터 해코지를 당했다.
관련링크
- 깨철이의 어원 - 네이버지식사전 - <익명의섬>
트리비아
- 막상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나니 깨철이랑 함께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게 좀 아쉽다. -Admin 2012년 5월 24일 (목) 23:34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