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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명/평론(신영미)
예전, 김도명의 식물설치작업은 아직도 나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문을 열고 들어선 전시장은 그 하나로 아름답게 고립된 작가의 정원처럼, 녹슨 철가루 사이를 비집고 자란 식물들이 내뿜는 향기는 거칠지만 전시장 가득히 기분좋은 현기증을 일으켰고, 은밀하고 엄격한 자연의 법칙을 엿보는 인간의 마음으로 하여금 숙연함마저 들게 했었다.지금. 또다시 그의 작업을 마주하면서 계속해서 이어온 그의 작업방식이 정직하게 거둔 수확물을 대하는 농부처럼 인내심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그의 노고만이 아니라 작업과 소통방식, 현시대 패러다임과 예술의 존재 의미등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는 점. 훨씬 세련되게 그리고 좀 더 치밀하게 다듬고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이번 전시에서 김도명은 과거의 설치물을 각각의 오브제로 대신하면서 전체의 메시지를 구성한다.‘흙에 씨앗을 뿌리고 거름과 물을 주고 하루에 한번씩 광합성을 시킨다’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원초적인 방법이 김도명 작업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다만 그것을 담아냄에 있어서 치밀하게 계산된 수치에 의해 화석과 같이 파여진 겹겹의 종이층들이 단순한 조형적인 재미만이 아니라 편집증에 가까운 몰두와 열정으로, 그만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말을 건내고 있다.언어에는 권력이 스며있다고 롤랑바르트는 말했다. 책이란, 신문이란 텍스트의 기호로써 인간에게 조직적인 그물망으로 매트릭스적인 허상을 만들어내고 절대 진리를 만듦으로써 역사속에서 혹은 학문이라는 뉴스라는 이름으로 인간정신을 옭아맨다. 근대과학의 태동이래 구조주의적 이분법 사고가 지배적인 방식이 되면서 그것은 물질과 정신, 과학과 자연을 확연히 구분하며 언어 재현 가능성을 믿는 낙관론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결국 인간 정신의 자유로움이란 기계론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방식에 의존하게 되고만 것이다.이에 작가 김도명은 언어의 권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분법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또한 그 한켠으로 유머러스한 농담을 건내며 단어 게임을 즐긴다.씨앗이 자라고 있는 페이지에서 취하는 단어는 사실 관객이 집중하여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지나가 버릴수도 있을만큼 숨은그림찾기 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구조을 해체한다.예를 들어, 가장 진실에 가까운, 하지만 잘못된 진실을 전하는 수단이기도 하는 <신문>에서는 맘에 드는 단어만 남긴채 몇 글자는 지워버려 title기사를 조작시켜 버린다. <옥편>.에서는 나‘아我’와 싹 ‘아芽’를 찾아내어 동음이의어로 연결시킨다던지, 영어사전에서는 “real" 이라는 단어를 취한다.각각의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그것이 문장화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메시지를 갖는다. 또한 그 구조는 무한하며, 복수 언어적이다. 다양한 텍스트로써 단선적인 논리와 의미만을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이것이 책이므로, 당연히 믿게 만드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또한 작가는 자연과 생명에 대해 예전부터 아주 긴 시간동안 작업을 해 오고 있다.자연은 언제부터인가 생명이나 영성을 지닌 신비스런 존재가 아니라 과학문명의 진보를 위해 인간의 손아귀에 붙잡힌 실험재료가 됨으로써 파괴되고 종속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의 작업은 처음부터 생명을 다룬다는 점(생명을 심고 돌본다는 점). 그 다양성과 생명의 감수성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에코페미니즘의 성향을 닮아있다. 인간과 자연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이분법적인 구조속에서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끝없이 순환하는 것이라는 철학이 담겨있다.결국 인간이 만들어놓은 여러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자연은 물론 인간 스스로도 모순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러한 현 시대를 반영하고 역사를 직관하는 작가로써 김도명은 그 소임을 그만의 독특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오랜시간 치열하게 보여주고 있다.주체/객체의 철저한 이분법에 따른 절대적인 객관성이 아니라 개인적 느낌에 집중하여 주객을 나누지 않고 다름을 존중하고 전체를 이해하는 그의 사고방식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키워나가야 할 이시대의 키워드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생명에 관한 작가의 작업에 관심과 애정을 보낸다. --신영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