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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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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min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2년 6월 21일 (목) 15:17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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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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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학력 2002년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회화전공 졸업
동 대학원 회화전공 졸업
출생년도 1969년
활동시작 .
활동장르 입체조형
활동지역 (주로)서울
웹사이트 티스토리 블로그-초어(艸魚)가 사는 바람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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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전시약력

개인전

그룹전

평론

전원길

김도명의 작업은 수작업으로 수조를 만들고 그 위에 영상을 통해 인생사의 한 토막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손작업은 골판지를 점점 크게, 점점 작게 자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포장재로서의 기본 쓰임에서 변용되어 하나의 그릇으로 바뀐 공간 안에 물을 담고 개구리밥이라고 불리는 작은 수초들과 풀잎들을 담는다.

종이와 물의 만남은 부적절한 만남이다. 비록 방수 처리가 돼 있다고는 하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뭇 염려스러운 긴장감을 갖게 한다. 이 긴장감은 물과 수초 위를 헤엄치는 두 마리 물고기의 어긋난 인연이 마침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상의 흐름 내내 함께 한다.

그의 작업은 원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자연현상을 재현해내는 영상 작업과 손을 이용한 인간의 기본 조형 방식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는 처음에는 탄탄한 구조를 유지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형태도 색도 변한다. 나는 작가 김도명이 꽤 오랫동안 종이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가 종이가 갖는 이 불완전한 재료적 특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너무 짧지도 너무 길지도 않은 종이 작품의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요소인가?

이번 비엔날레 작업에서 김도명이 보여주고 있는 물고기 영상 작업은 그가 구성한 두 마리 물고기의 이야기와 아울러 시간성을 전제로 한 영상 매체, 그리고 느리지만 인간의 관찰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종이의 수명과의 조합이 주는 그 구조적 관계성으로 인하여 더욱 흥미롭다. --전원길

안현숙 - 초록草綠_생명을 부르다.

● 현대 생활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화두는 Well-Being. 즉, ‘잘 사는 것’에 관한 일련의 주장들이다. ‘잘 사는 것’. 그렇다. 우리가 지금 열망하는 삶의 형태는 더 이상 맹목적인 부유함도, 거창한 정치적 대의명분도 아니며. 우리가 자신과 세계 사이에서 건져 올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훼손되어 온 인간정신(人間精神)의 복원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인간정신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혹은 인간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적 세계에서 서로의 관계를 어떠한 식으로 정의하고, 또 이해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에 다다르게 되었으며, 여기에는 현시대의 휴머니즘적 전망에 대한 ‘비평적 재고. 즉, 인간만이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존재라는 휴머니즘적 사유체계에 대한 비판적 조명이 담겨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김도명은 그의 과거 연작들이 지향했던 생명성이나, 순환 등 보이는 것 이외의 우리 삶을 지탱하는 (소리 없이 여리지만 절대적으로 강한) 대상들에 대한 사유와 존경을 다시 한 번 변주한다. 그는 인간을 정신적으로 우월한 존재라고 믿는 인류 내부의 암묵적 합의가 도출한 자가당착의 오류에 그만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이는 작가에게 인간자연이 서로의 관계적 지형학을 어떻게 그려나가고 있는지를 목도하는 기회로 작용되며, 이것은 어느 순간 (한 작가의 고백적 서술이) 호응하는 타인들의 반응과 참여로 대단한 사건과 판단들이 되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 김도명의 작품은 재료와 형태의 수수함과 순박함에도 불구하고 무한과 반복, 안과 바깥의 순환, 형이상학적 조합과 승화를 가시화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흔히 문학의 어법에서 ‘역설’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이것의 효과는 대상을 사고하는 방식과 수를 늘리고, 나아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숨겨 둔 작가의 진실을 마침내 ‘보는 이’ 스스로 깨우쳐 전율케 하는 것이다. 작가가 작업하는 방식은 켜켜이 쌓은 종이 재질의 판으로부터 음각과 양각(부조와 환조), 때로는 축적과 분산, 반복의 방법으로 떨어져 나온 각종 항아리 형상의 다양한 태도들을 나열하는 것이며, 거기에 생명을 심는 것이다. 이 형상들은 1차원의 판을 공간삼아 서식하다가 실제 공간으로 나와 자리한다. 2006년. 공주금강자연비엔날레와 안성에 위치한 대안공간소나무에 영구 설치 되어있는 작가의 유사한 형태의 다른 시리즈들은 현재 외부공간에 그대로 노출되어 비와 바람, 공기에 산화되어 머지않아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일종의 프로세스 아트라고 볼 수 있는 작업의 과정은 ‘종이’, ‘씨앗’이라는 생명과 순환의 상징적 알레고리들이 품고 있는 자연의 현재모습 과거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모습까지 함축하고 있다. 작품의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성격으로 보건데, 그것은 자연에 직접 개입하지만 언젠가는 소멸하며 해악을 끼지 않는, 그러나 재생의 가능성을 역시 보여주는 일종의 대지미술 프로세스이다. 흙으로, 공기 중으로, 자연으로 사라진 대상은 순환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가 뿌린 새로운 씨앗을 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비교적 미술 제도권 안이라 볼 수 있는 화이트 큐브 안에서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 또한 자연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유사하다. 겹겹이 쌓아 올린 음각 항아리, 같은 형태가 반복 된 가운데 다른 어느 한 부분 갑자기 커지는 대상, 안으로부터 무수히 탄생하는 새로운 배열체들은 이것들 상호가 전혀 다른 맥락으로부터 도출되는 이질적인 관계라는 흔적 없이 천진하고 솔직하게 개인적인 기억들을 ‘우리의’ 기억들로 전이시킨다.

● 배열체. 이 상징은 수많은 복잡한 구조로서, 존재 가능한 생명체의 구조의 기본 단위를 연상시킨다. 또한 씨앗, 흙이 담긴 유사-대지, 나무, 등은 생명의 순환이나 자연계의 순환 따위를 새삼 떠올리게 해준다. 단순하고 심플한 형태가 특정 공간과 맞물려 자아내는 상상력과 친화적 혹은 생태적, 생명존중과 같은 사유의 일단을 표현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재현된 대상들은 얼핏 예술작품들이 흔히 가진 논리적 과잉이나, 바라보는 자의 예술적 기대에서 벗어나 단지 작가 한사람의 유년의 기억을 재현 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상이 화한 구체적 형태나 그 형태를 이르는 범상한 이름들은 단지 사유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다.

● 도구의 유용함을 판단하는 우리의 기준은 무엇을 재현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것을 다르게 발언 할 수 있느냐가 되어야 한다. -- 안현숙


이가림 - 생명을 품은 예술, 공간과의 호흡작가_ 김 도 명.

탈 근대적 사회 흐름은 인간 중심적인 근대 산업화 이후 필연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그 과정에서 초래된 과오를 청산하고, 상실된 인간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움직임들이 다방면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문명에 대한 반성과 함께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얼마 전 뉴스와 신문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명문대 박사학위 소지 부부의 시골생활 이야기는 자신들의 무기인 지식팔기를 거부하고 자연과의 관계회복을 꿈꾸며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도심 한복판의 서점에는 최근 들어 부쩍 도가사상과 관련한 책들이 앞다투어 진열되며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서점은 온갖 지식이 문명의 최초상징인 문자언어의 형태로 집결되는 곳이 아니던가? 문자문명이 집결된 공간에서 오히려 문명현실로부터의 도피적 성격을 지닌 도가사상이 유독 관심 받고 있음은 아이러니컬하면서도 되새겨 볼만한 대목이다.결국 오늘날 탈근대사회는 이전의 근대 사회가 남겨 놓은 잔재를 청산해야 할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안적으로 등장한 포스트모던의 화두로 ‘자연’과 ‘소통’ 등이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소통을 향한 절실한 목소리들을 통해 그동안 인간인간 사이는 물론이요, 인간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소통이 결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작가 김도명은 바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화두를 간접적으로 담고 있다.이 글에서는 본 전시<오감 + α>에서 + α로 분류될 수 있는 ‘생명을 품은 공간예술’에 해당되는 그의 작업을 현대미술의 다양한 담론과 관련지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Ⅱ.그의 작품은 문명과 자연의 만남이다. 의학전문서적, 신문, 영어사전등 문자언어로 지식을 담는 틀은 그의 작품 속에서 생명을 담고 키워내는 작은 틀로 그 의미와 역할이 바뀐다. 김도명이 다루고 있는 매체들-책, 신문 등에는 근대 이후 인간이 치열하게 쌓아온 지식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말은 글로 쓰여지는 순간 진실성에 대한 신뢰도가 부여되는 듯하다. 우리는 책에, 혹은 신문에 적힌 글을 의심의 여지없이 진실,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롱랑바르트는 일찍이 언어는 폭력이라고 말한바 있다. 일단 글로 담아지는 순간 그것들은 맹목적 신뢰와 함께 권력을 얻게 된다. 때로는 책은 이성과 지식의 횡포이며, 신문은 미디어의 횡포다. 이성과 지식이 빽빽이 찬 건조한 사물의 틈바구니에 김도명은 화분형태를 제도하고 흙을 깔고 씨앗을 심어 푸른 생명을 키워낸다. 그러나 인간 이성의 틀 안에 피어 오른 푸른 생명을 도시생활 속에 잊혀져가는 자연에 대한 갈망, 소멸 되가는 자연의 애처로운 목소리로만 보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오히려 그의 작품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생명을 돌보는 성실한 손생명을 다루는 작업은 아무리 정밀히 계산해도 변수를 품고 있는 탓에 예정된 결과를 보장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김도명은 전시 일정이 잡히면 그날로부터 싹트는 날짜를 계산하여 씨앗을 심고 이틀에 한번 물을 주며 푸른 생명의 탄생을 기다린다. 씨앗은 그 자체가 희망이다. 희망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시간과 노력, 그리고 애정이 필요하다. 작가는 바쁜 일상의 틈을 쪼개, 거르지 않고 물을 주며, 밤에는 책, 신문등과 씨름하여 화분의 틀을 만들어낸다.김도명의 작업과정은 노동의 반복이다. 물을 주는 행위, 면도칼로 책, 신문을 하나하나 긋는 행위…… 창조는 노동에서 온다고 믿으며, 반복되는 행위 안에서는 사유 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성실하며 자기 성찰적인 그의 성품이 드러나는 대목이다.신문, 혹은 책을 제도하고 면도칼로 긋는 행위는 인간 문명 스스로를 해체시키고 자연을 담아내려는 문명 이기주의에 대한 깊은 반성으로 느껴진다.Ⅲ.예술은 상상과 희망을 실재화하는 작업이다. 예술에 있어서 작가의 노력은 표현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는 의지로 보여지면서, 그것은 최소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의 존재를 우리에게 계속 인식시키는데 의의를 갖는다. 풀밭에서 헤엄치며 노니는 물고기는 얼핏 자연자연의 만남처럼 보인다.(그림) 그러나 실은 자연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이다. 테크놀로지는 자연친화적 형태로 자연에게 다가간다. 이것은 오늘날 인간이 꿈꾸는 환경친화적 문명의 유토피아인지도 모른다.근대 이후 자연을 정복하려던 인간의 야망은 탈근대로 들어서면서 환경친화적 발전으로 방향을 바꾼다. 작가 김도명의 작업은 이러한 탈 근대사회의 반성적 사유를 담고 있다. 그의 작업은 김도명 개인을 닮았으나, 스스로를 반성하며 해체시키고 자연을 담아가는 그의 작업과정은 오늘날 환경생태학을 필두로 이뤄지고 있는 문명과 자연의 관계를 닮았다.깍듯한 예의를 갖추는 김도명 작가는 분명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와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작가 내면에 스며있던 성실함과 인간미, 그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휘몰아치듯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허위의식과 의미 없는 기표들이 부동하는 시대다. 과거에 비해 시간의 속도조차 더욱 빨라진 것만 같다. 그런 와중에 매 순간 진심을 다하며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김도명 작가는 그러했다. 일반적인 전업 작가들과 달리 사회 현실에 몸담고 있으나 그 내면에는 무위자연의 여유를 잃지 않은, 그리하여 자신의 희망을 농부 같은 성실한 손으로 키워내는 작가이다.그의 작업은 딱딱한 문자언어 틈새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며, 호흡하는 푸른 생명은 공간(전시장)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조용히…… 외유내강의 모습을 보여주던 작가처럼 말이다. --이가림(예술학)

최정은

오뉴월, 초여름의 경계에서 내리는 여름비는 새초롬한 봄비보다 훠얼 수줍음이 많다. 다소 여리고 차분한 모습으로 내려와, 대지에 기꺼이 무릎을 맞대고 입맞춤을 한다. 그녀의 입맞춤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일까.....!!어느덧 나무와 풀들은 그녀를 맞이하며 초록의 입김을 내뿜어 싱그러운 공간을 꾸미기에 여념이 없는 듯 허다. 그 비밀스러운 공간에 조심스레 한 발자국 내딛고 들어와 명상의 시간을 가지고 스스로를 정화시키다보면....... 문득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가 한명 있다.그가 바로 작가 김도명이다.수줍고 차분한 ‘여름비’같은 느낌을 주는 그를 처음 만났던 곳은 그의 세 번째 개인전이 열리는 전시장에서였다. 따사로운 봄기운이 만연한 가운데 열렸던 그 전시는 마치 도심 속 작은 정원을 연상케 했는데, 그 작고 아담한 정원에서 내뿜는 초록의 아우라는 전시장은 물론 그 주변일대가지도 맑게 정화하는 하나의 산소공급기 역할을 해내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또한 시공을 초월하며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자연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여지를 두고 있었다는 것은 비단 본인뿐만 아니라 그의 전시장을 방문하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깊은 감명을 주었으리라!김도명의 작업관은 인간이라면 사유해야할 가장 본질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오랜 시간동안 ‘나는 누구인가?’라는 내적물음에 대한 해답을 쫒아 스스로의 존재론적 확인이라는 차원에서 작업을 진행을 하는데, 확실히 그의 작품을 보면 작업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유의 시간을 할애했는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기도 하다. 자신의 자아존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경외감을 가지고 접했던 대상으로 ‘생명’을 선택,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생명의 중요성을 작품구성요소 1순위로 꼽는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나와 네가 모두 생명체이고 공동운명체이기에 주체와 객체간의 ‘소통성’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생명체의 자연스러운 생성과 소멸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성(과정성)’에 주목한다.그의 작업에서 가장 주된 오브제는 식물이다. 작업과정 역시 씨앗을 고르고, 그것을 심고, 정성스레 물주고 햇빛주어 길러내는 행위를 반복한다. 단지 작가적 의도에 따라 그 식물이 자라는 화분이 바뀔 뿐이다. 겹겹이 쌓여진 신문지, 혹은 의학서, 때론 사전 등을 작가 특유의 섬세함과 노력으로 하나하나 재단을 하여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수공의 노력의 결실에 “와 ! 대단하다 !”라고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자면 작가의 숨은 의도는 자칫 감춰질 수 있다. 왜 신문일까? 책일까? 그 공통의 속성은 바로 문자, 즉 언어가 표상하는 어떤 기호체계를 담고 있는데, 여기서 작가는 문자가 가지는 이중적 한계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만약 문자로 어떤 것에 대해 규정지을 때, 그것은 진실, 거짓의 참 여부를 떠나 무조건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그러한 사회구조의 모순과 편협함 속에서 염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방법의 일환으로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작가 김도명은 자아에 대한 진지한 사유, 작업과정에서의 끊임없는 노력, 작품의 조형미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작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최정은(큐레이터)


유정아 - 생명의 속삭임 그 첫 싹을 틔우다!

작가 김도명의 전시공간은 봄내음으로 가득하다. 아마도 이 전시를 위해 작가는 몇 개월 전부터 정성스레 흙을 고르고 그 속에 싹을 심고는 마치 처음으로 꽃씨를 심은 어린아이처럼 조바심과 기대감으로 설레었으리라. 도심의 한가운데 위치한 작가의 전시장을 찾아와 곳곳에 숨어있는 여린 싹을 보는 관람자들에게 또한 그것은 아스팔트도로의 빈 곳을 뚫고 솟아오른 초록 풀잎을 발견하는 기쁨이다. 그의 작품을 이루는 요소는 한결같이 ‘책(신문),흙, 씨앗’이 전부이다. 씨앗은 책 속에 담긴 흙 안에서 발아하고 뿌리를 내린다. 김도명의 작품에는 이렇게 ‘생명’이 존재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시간 속에서 생명을 지니는 것은 식물만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단단해 보이는 책(신문)도 서서히 그 빛을 바랜다. 아마도 작가는 식물과 책이라는 두 존재를 설정해 두고 그 가운데에 흙이라는 매개항을 넣음으로써, 흙으로부터 성장하여 존재를 만들어가는 것(식물)과 이제 서서히 흙으로 돌아가 이 세상에서의 존재를 마감해 가는 것(책과 신문)의 상이한 속도감을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이러한 두 존재의 대비는 작가가 제시하고 있는 문자언어를 통해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문자를 강조함으로써 관람자에게 끊임없이 언어를 통한 의미전달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牙)아(我)>에서는 옥편의 중앙에 공간을 마련해 씨앗을 심었는데, 거기에서 작가는 芽와我, 그리고 제목에는 없지만 峨라는 한자에 붉은색 펜으로 동그라미를 그어 놓음으로써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마찬가지로 소학사전을 펼쳐놓은 <book-왈(曰)>의 작업에서는 有와 無, 그리고 前과 後가 강조 되어 있다. 더 나아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문자를 지움으로써 특정 글자를 취하기도 한다.붉은 색으로 밑줄을 그음으로써, 혹은 문자를 지움으로써 특정글자를 취한 문자언어들을 통해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갤러리라는 공간으로 끌어들여 문자언어와 배치하는 작가의 작업은 중국 현대미술가 쉬빙(Xu Bing)의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쉬빙의 작업 <누에 시리즈>는 누에가 책, 신문, 노트북컴퓨터 위를 기어 다니면서 면주실을 잣는 과정을 전시기간 내내 보여주었다. 쉬빙의 작품에서는 시간이 흐르면서 누에가 잣는 그 명주실에 의해서 신문이나 책이 전하려는 문자나 정보는 계속해서 감추어져 관람객들은 더 이상 그것을 앍을 수 없게 된다.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씌어 있지 않은 빈 페이지에 누에가 알을 낳고 그 속에서 부화한 새끼들이 남긴 흔적들이 어떤 무늬를 새기면서 마치 정보가 가득한 한 페이지의 책처럼 거짓 정보를 만들기도 한다. 이 두 가지 작업은 쉬빙이 문자를 해독하려는 관람자의 시도를 좌절시키면서 문자와 자연의 경계를 탐색해나가는 기존 작업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반면, 김도명의 작업에는 작가가 문자정보에 기대는 믿음이 존재한다. 작가는 적극적으로 문자를 이용하고 이를 제시함으로써 문자정보가 가진 리얼리티의 힘을 믿는 것 같다. <Real>이라는 작품 속에서 관람자는 작가가 펼쳐놓은 사전 속에서 붉은색으로 밑줄 그어진 ‘real' 이라는 단어를 찾아 'a. 진실한, n. 실물 혹은 실체’ 라는 뜻풀이를 자연스럽게 따라 읽게 된다. 2004년 작품 <美 조정검토>에서는 아마도 미국과 한국과의 어떤 외교적 관계를 다룬 내용이었을 신문의 톱기사(한국일보 2004년 6월2일자)는 그 본래 의미를 상실하고, 작가에 의해서 ‘美 조정검토’라는 글자만이 남았다. 신문에서 ‘미국’을 뜻했던 한자어 ‘美’는 갤러리라는 공간 속에 자리잡은 이 작품에서 ‘아름다움(美)’을 뜻하도록 의미가 달라졌다. 즉 작가는 한편으로는 유/무, 전/후, 자연/인공이라는 이분법의 경게를 제시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美에 대해서 다시 조정하고 검토해 볼 것’이라는 메시지를 수수께끼처럼 가볍게 그러나 동시에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도자기 화분을 연상시키며 책의 한 가운데를 비우고 채워진 <화합>과 붉은 표지의 책들을 세워놓고 중간을 부분을 잘라내어 만든 식물의 형상 <book-붉은 서랍>은 마치 도심의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줄지어 늘여놓은 일련의 화분들처럼 인공적이다. 화분은 자연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분은 전적으로 인간을 위해서 인간의 공간 속으로 들어온 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어떻게 구분되겠는가. 그것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연 속에 뿌리내리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소멸하면서도 자연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는 인간의 비좁은 시각일지 모른다. 앞으로 김도명의 작품 속에서 단순히 갤러리의 한 구석을 장식하는 인공적인 자연이 아니라 자연과 그 속에서 깃들여 사는 인간들의 삶이 이루는 아름다운 공생을 보고 싶다. --유정아(영 아티스트 필자공모 당선자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이남의 - 초록의 꿈을 꾸는 작가, 김도명을 만나다.

지난 4월 6일부터 19일까지 인사아트센터에서 김도명의 세 번째 개인전「봄날-초록의 꿈을 꾸다」가 열렸다. 우연히 그의 전시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려서 전시장을 지키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마구 물어봤는데 마치 본인의 작품인 것처럼 너무 상세히 설명해 줄 때 눈치챘어야했던 건가? 전시장을 나가려는 나에게 그가 “저, 싸인 해 드릴까요?”하고 말할 때에서야 ‘아, 이 사람이 작가였구나.’ 하고 깨달았지만 원래 알았던 척 싸인을 받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갔다. 사진기자와 함께 국민대학교로 그를 만나러 갔다. 후배들의 작업실 한 쪽에 그의 공간이 있었다. 이렇게 조용한 표정의 그에게 과연 오늘 많은 말을 끌어낼 수 있을까? 살짝 긴장됐다. 작업실 한 켠에는 전시장에서 봤던 그의 작품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매력적이었던 그의 3번째 개인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환경적인 이야기도 담고 있고 현대 권력에 대한 비판과 반성도 하려고 했어요. 작품「초록을 꿈꾸다」는 남성 1명과 여성 4명의 그림으로 구성되었는데 여성들보다 남성을 더 크게 그려서 가부장적인 힘을 비판했어요. 페미니즘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까요.예전에는 권력과 힘이 총과 칼에 있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정보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가 담고 있는 것은 진실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책과 신문 등을 잘라 풀을 심었어요. 책 선정에도 기준이 있는 것 같았는데요. 네,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작품 「붉은 서랍」에 쓰인 책은 의학 서적인데요. 어떤 사람이 칼을 들이대면서 ‘배 좀 갈라봅시다’라고 하면 기겁하겠지만 만약 의사가 수술을 하겠다고 칼을 들면 응하지 않겠습니까? 명확한 진실 규명 없이 정보를 무조건 신뢰하는 것을 경계하는 작품이지요. 또 ‘서랍’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은 서랍이 사람들에게 소중한 기억을 보관하는 곳인 것처럼 정보도 그것에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인 풀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작품을 보고 작업 과정이 궁금했다. 작업 과정을 물었다. 제본에 사용하는 작두를 사용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사용한 도구는 면도칼 하나 뿐!집중하면 자리를 안 뜨는 편이거든요. 저는 창조는 노동에서 온다고 믿어요. 반복적인 행위(예를 들면 면도칼로 책을 긋는) 안에서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요. 그런 것이 작품이 작가에게 주는 행복이죠. 면도칼로 책을 자른 후에 풀을 길러도 물이 새지 않도록 에폭시라는 화학재료를 발라요. 그리고 흙을 넣고 씨앗을 뿌리는 거예요. 보통 채소를 많이 키우고 허브나 화초도 심어요. 가느다란 줄기들과 가냘픈 이파리들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전시를 본 당시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들어와서 마구 떠들며 뛰어다니던 것이 떠올랐다. 작품 둘레로 줄을 치지도 않은 탁 트인 전시 공간이라 작품 훼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물었다. 관람객들이 ‘이런 곳에서 풀이 자라는 구나!’하고 감동하죠. 제가 원하는 것은 전시를 보고 나간 사람들이 길 주변에 자란 풀을 보고도 전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감동하는 것이에요. 말로 하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생명의 경이로움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으니까요. 지난 전시 때에는 관람객들에게 씨앗을 나눠줬어요. 그런데 이번 전시에는 관람객들도 많았고 작품 훼손도 많아서 전시 막바지에는 줄로 막아뒀어요. 제가 갔을 때도 어린이들이 많이 왔던데요. 네, 어린이들이 풀을 만지고 작품 안에 들어가기도 하고. 부모들이 일차적으로 통제를 해야 하는 건데. 어린이들뿐만이 아니죠. 물론 작품을 순수하게 느껴주는 건 고맙지만 어디까지나 전시물이니까. 아무래도 아직 관람객들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죠. 아, 네. 제가 공연 스텝으로 일한 적도 있었는데 휴대폰을 절대 안 끄는 사람들이 있다니까요.그의 속상한 마음이 전해져왔다. 그러나 그가 작품 몇 개를 직접 보여주고 만져보도록 허락하자 나도 금세 흥분해 버렸다. 관람객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렇지만 아무리 좋아도 역시 만지는 건 안 됩니다!요즘은 국민대학교 홍보팀에서 사진을 찍고 있어요. 안정적이긴 하지만 작업을 정말 하고 싶어요. 작업을 위해서 이 정도는 감수해야죠. 택시 운전을 한 적도 있는데요, 하하.저는 규정지어지고 싶지 않아요. 이를테면 풀 작가, 페미니즘 작가 같은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제 작업의 큰 맥은 타자를 통해 나를 찾는 것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예비 예술가들에게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예비 예술가들이 아니라 지금도 예술가들이죠, 하하. 저도 ‘선배’라기 보다 학교가 아닌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요. 누구나 원하는 길을 가다가 힘들 때가 있을거예요. 제가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미술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와 싸운 일, 학원비 벌려고 배를 탔던 일. 하하, 그런 시절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가장 원했던 걸 하고 있잖아요.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정말 행복한 거죠.그리고 무엇인가를 할 때 열심히 최선을 다 하되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네요.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기어코 우리를 학교 주변 식당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순두부찌개를 사 먹이고 말았다. 왠지 선뜻 따라 나서기가 좀 어려웠는데 말이다. 그가 사진 찍는 일을 한다는 말을 할 때부터 잔뜩 긴장해버린 사진기자와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에 역시 긴장한 나는 따뜻한 밥이 들어가고서야 경계를 푼 것이었는지? 오히려 김도명씨는 처음부터 따뜻하게 마음을 열었는데도. --이남의

안현숙

가장 평범한 곳으로 부터의 숭고함우리의 마음은 밭이다. 그 안에는 기쁨, 사랑, 즐거움, 희망과 같은 긍정의 씨앗이 있는가 하면 미움, 절망, 좌절, 시기, 두려움 등과 같은 부정의 씨앗이 있다. 어떤 씨앗에 물을 주어 꽃을 피울지는 자신의 의지에 달렸다. - 틱낫한, <화> 中작가 김도명이 보여주는 세계는 생명과 함께 공명하는 초월적 사유의 세계이다. 흡사,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사상을 입체적으로 실천하는 듯, 그의 작업방식은 자연법칙에 따라 행위하며, 인공적인 작위가 없다. 대상이 그의 손을 거쳐 새로이 의미를 얻는 것은 한 톨의 씨앗이 발아하여 새 이름을 얻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 둘은 원래 하나요, 단지 세상의 이치를 쫒아 거스름이 없이 흘러가는 것이니 그저 자연(自然)에 속해 아름다울 수 있다. 사소하고 미미한 것들이 그것의 내부로부터 나와 큰 울림으로 화하는 것은 겹겹이 층지는 사유의 결과이다. 그가 대상을 선택하고 매만져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은, 새 봄에 논과 밭을 고르며 결실을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짐작컨대 그것을 수행하는 마음도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농부에겐 땅을 일궈 타인과 생명을 나눌 이유가 있고, 작가에겐 사유를 일궈 세상과 기쁨을 나눌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작품을 탄생 시키는 인고의 마음과 그 무엇이 다를 손가. 씨앗. 그 작은 우주로부터의 반가운 소식은 인간의 의식을 초월한 고차원적인 자연행위이자 완성적 생명행위이다. 대개의 씨앗은 작고 단단하고 메말라 있다. 그것의 외형만으로는 어떤 크기의 나무가 될 지 어떤 모양의 꽃을 피우게 될 지 어떤 열매를 맺게 될지 알 수 없다. 씨앗을 심고 가꾸려면, 그것이 반드시 생명을 안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씨앗이란, 그것이 씨앗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미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하는 존재이며, 그 이유만으로 이미 희망을 갖고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작가 김도명의 도가(道家)적 이상주의와 현대의 현실주의적 세계관은 서로 충돌하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두 세계의 상충하는 이미지는 초월적 가치관인 ‘예술’의 장(場)에서 서로 이해 될 수 있다. 예술이란 어찌 보면 어느 종류의 씨앗도 그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게 생명으로 답하기 때문이다.책이나 신문과 같은 매스미디어와 사전, 고전(古典)과 같은 인간 사유의 기록들의 공통점은, 객관적 기록으로 남아 한 시대와 지역에 일어난 사건들의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현실의 지표들로부터 그 역사를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주인이 바로 우리들이라는 진리를 이끌어낸다. 그의 작품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생명의 끊임없는 순환, 자연법칙의 이상적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약동하는 생명은 어둠을 걷고 그 연약한 머리로 땅을 밀어 올려 시작 될 때 가장 아름다우며, 또한 그 것은 우리들의 숨결에 이미 우리와 같이 숨 쉬는 또 다른 것들(타자)의 숨소리 역시 섞여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망각과 감탄을 계속한다. 감사 없는 마음에 어떤 싹이 터 오고, 잊고 있던 일상의 숭고함을 비로써 깨달을 때, 생명을 움트게 하는 자연의 위대한 목소리를 다시 들을 때, 인간 또한 그들 스스로의 마음에 이미 생명이 있었음을 알리라. 진리라는 것은 편재하나 소리가 없어 우리의 시선을 오래 붙잡아 둘 수 없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으나 어디에나 진리가 있는 것처럼 깨닫지 못해도 생명은 늘 가까이에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안현숙(미술평론)

안현숙 - 초록草綠_생명을 부르다.

● 현대 생활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화두는 Well-Being. 즉, ‘잘 사는 것’에 관한 일련의 주장들이다. ‘잘 사는 것’. 그렇다. 우리가 지금 열망하는 삶의 형태는 더 이상 맹목적인 부유함도, 거창한 정치적 대의명분도 아니며. 우리가 자신과 세계 사이에서 건져 올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훼손되어 온 인간정신(人間精神)의 복원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인간정신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혹은 인간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적 세계에서 서로의 관계를 어떠한 식으로 정의하고, 또 이해하고 있는가하는 물음에 다다르게 되었으며, 여기에는 현시대의 휴머니즘적 전망에 대한 ‘비평적 재고. 즉, 인간만이 생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존재라는 휴머니즘적 사유체계에 대한 비판적 조명이 담겨 있음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 김도명은 그의 과거 연작들이 지향했던 생명성이나, 순환 등 보이는 것 이외의 우리 삶을 지탱하는 (소리 없이 여리지만 절대적으로 강한) 대상들에 대한 사유와 존경을 다시 한 번 변주한다. 그는 인간을 정신적으로 우월한 존재라고 믿는 인류 내부의 암묵적 합의가 도출한 자가당착의 오류에 그만의 방식으로 저항한다. 이는 작가에게 인간자연이 서로의 관계적 지형학을 어떻게 그려나가고 있는지를 목도하는 기회로 작용되며, 이것은 어느 순간 (한 작가의 고백적 서술이) 호응하는 타인들의 반응과 참여로 대단한 사건과 판단들이 되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

● 김도명의 작품은 재료와 형태의 수수함과 순박함에도 불구하고 무한과 반복, 안과 바깥의 순환, 형이상학적 조합과 승화를 가시화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흔히 문학의 어법에서 ‘역설’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으로서 이것의 효과는 대상을 사고하는 방식과 수를 늘리고, 나아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숨겨 둔 작가의 진실을 마침내 ‘보는 이’ 스스로 깨우쳐 전율케 하는 것이다. 작가가 작업하는 방식은 켜켜이 쌓은 종이 재질의 판으로부터 음각과 양각(부조와 환조), 때로는 축적과 분산, 반복의 방법으로 떨어져 나온 각종 항아리 형상의 다양한 태도들을 나열하는 것이며, 거기에 생명을 심는 것이다. 이 형상들은 1차원의 판을 공간삼아 서식하다가 실제 공간으로 나와 자리한다. 2006년. 공주금강자연비엔날레와 안성에 위치한 대안공간소나무에 영구 설치 되어있는 작가의 유사한 형태의 다른 시리즈들은 현재 외부공간에 그대로 노출되어 비와 바람, 공기에 산화되어 머지않아 흙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일종의 프로세스 아트라고 볼 수 있는 작업의 과정은 ‘종이’, ‘씨앗’이라는 생명과 순환의 상징적 알레고리들이 품고 있는 자연의 현재모습 과거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모습까지 함축하고 있다. 작품의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성격으로 보건데, 그것은 자연에 직접 개입하지만 언젠가는 소멸하며 해악을 끼지 않는, 그러나 재생의 가능성을 역시 보여주는 일종의 대지미술 프로세스이다. 흙으로, 공기 중으로, 자연으로 사라진 대상은 순환의 어느 시점에서 누군가가 뿌린 새로운 씨앗을 품을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비교적 미술 제도권 안이라 볼 수 있는 화이트 큐브 안에서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 또한 자연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유사하다. 겹겹이 쌓아 올린 음각 항아리, 같은 형태가 반복 된 가운데 다른 어느 한 부분 갑자기 커지는 대상, 안으로부터 무수히 탄생하는 새로운 배열체들은 이것들 상호가 전혀 다른 맥락으로부터 도출되는 이질적인 관계라는 흔적 없이 천진하고 솔직하게 개인적인 기억들을 ‘우리의’ 기억들로 전이시킨다.

● 배열체. 이 상징은 수많은 복잡한 구조로서, 존재 가능한 생명체의 구조의 기본 단위를 연상시킨다. 또한 씨앗, 흙이 담긴 유사-대지, 나무, 등은 생명의 순환이나 자연계의 순환 따위를 새삼 떠올리게 해준다. 단순하고 심플한 형태가 특정 공간과 맞물려 자아내는 상상력과 친화적 혹은 생태적, 생명존중과 같은 사유의 일단을 표현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재현된 대상들은 얼핏 예술작품들이 흔히 가진 논리적 과잉이나, 바라보는 자의 예술적 기대에서 벗어나 단지 작가 한사람의 유년의 기억을 재현 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상이 화한 구체적 형태나 그 형태를 이르는 범상한 이름들은 단지 사유를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다.

● 도구의 유용함을 판단하는 우리의 기준은 무엇을 재현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어떤 것을 다르게 발언 할 수 있느냐가 되어야 한다. --안현숙(개인전 서문 중에서)


안현숙 - Green 草綠_ attracts the life

Most issued subject at present day is Well-Being. Nothing but, a series of points all that ‘Well- life (living)’. That’s it. Our wishing life is not blind wealth and a great political causes. Our expecting fruit from the between oneself and our world is the spiritual restoration that has been injured in the historywillingly or not. Accordingly we have arrived the questions that we have thought what the essence of human life is or we have defined how mutual relationship is in the natural world surrounding human being and also we have come to understand well. And we cannot but overlook for the critical opinion, ‘ critical reconsideration’ for humanism’s insight in our time that human being is the only one that can think and make sense.

Artist, Kim, Do-myoung plays a variation one more on the thinking and respecting for the lives his past stories have talked on and circulations etc and the things other than visible ones to support our life (soundless weak but absolute strong). Hestands against by his way the fallacy of self-contradiction that the silent concurrence from human inside believes human is the supreme- being mentally. That has effected on this artist how human and nature have drawn the morphology and also (his own narration) has been made an important process for great event and decision by the others’responses and participations. Kim Do-Myoung’s work has been made visible things from the infinity and repetition, the circulation of in & outside and metaphysical comparison and sublimation, although his material and form are simple and honest.That is commonly expressed as a paradox in the literature. Accordingly the effect of this makes increase the thinking ways and numbers on the object. And then awakes viewer to the truth of him. His working way is to enumerate various figures of crocks by depressed & embossed carving (carving in the round) from filed up paper plates, sometimes, accumulation & break up and repeated method and then plant there. These figures live in the one -dimensional world and outgoing to the placed in the real world.

His talking subject in the white cube where symbolized the formula of art is similar to that in the nature. Filled up pots and repeating with same figures and suddenly one part’s ballooned, newly being born configurations from inside are entirely divergentrelations each other, why is they are coming out from entirely divergent veins. And then the relation transfers to his innocent and frank private memories to our ones.

Configurations. As this symbol is the complicated structure, basic unit of live-being is reminded. And also, Seeds of origin, Resemblance is reserved earth – the earth (the ground), tree, etc are flashed across our mind the circulation of life or nature. Simple figures express the stages of thinking such as familiar or ecological respect for life going in near with the imagination. Just overlooked, the physically reproduced ones looks like to re enact only his private memory of childhood but the objects or name named the ones is just tools for expressing thinking.

Our yardstick to decide the value for the tool should be not what reproduced but how speak out through out it.

Art theory, Ahn, Hyun-sook

차예지

사람은 태어나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면서부터 순수한(본질적) 자아와 기표화된(사회적) 자아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자아 정체성을 찾아간다.빌렘 플루서는 태초 이래로 인간 문화의 두 가지 대립되는 전환점을 기원전 2000년대 중반 무렵 완성된, ‘선형문자’의 발명과 현대 기술의 산물인 ‘기술적 영상’의 발명으로 보며, 이는 ‘문화가 자신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려 했는가’ 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던진다. 언표와 기술영상은 우리의 순수한 자아를 기호화된 기표 속에 가두고, 그것을 다시 시공간 속으로 환원시켜 재투영 시키는(‘상상력’이라는 능력을 거치는) 과정에서 순수한 자아와는 다른 모습의 자아를 발견하게 한다. 한계를 가진 기표로 정의된 자아와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염된 자아는 순수한 자아와 거리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전시의 두 작가는, 사회화된 자아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특한 조형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작가들이다. 먼저 김도명은,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아로 대변되는 식물들이, 작가자신의 분신이 되는 듯,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무수히 많은 언표들로 이루어진 책, 신문 등의 -의심할 여지없는- 텍스트들 속에서 식물들은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작가는 식물이 몸담고 있는 텍스트들의 배열을 자의적으로 재배치함으로써 기존의 그 텍스트가 가지는 의미를 재생산하고, 식물을 지시하는 단어를 찾아 표시해 둠으로써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층화되어 있고, 조직화 되어 있으며 유기화 되어 있는 사회의 틀들을 지워 나가며 더 다양하고 새로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을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작업이다.이것은 작가가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인식하고 있음이며 한계를 가진 언표들로 표현되어지는 자아의 모습 또한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음이다. 하지만 작가는 동시에 텍스트의 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기표화된 세계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음도 알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과정 즉,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아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또한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작가 진형주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자아들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 안에 존재하는 내적 자아들은 다면성을 지니며 서로의 모순 관계 속에서 뒤엉켜 있다. 작가는 자아의 본질을 찾고자 노력하나 순수한 작가의 자아는 사회화된 자아의 모습들, 즉 자신의 본질이 기표화 되면서 사회적으로 자리한 자신의 모습들과 함께 갈등하고 있다. 사회의 타자의 시선들로 만들어진 자신의 본질은 ‘기표화’ 되어 자신을 구성하고 있지만, 이미 ‘기표화’ 과정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모습이다. 그 한계 속에서 갈등하는 자아는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다양한 자아의 모습으로 커다란 하나의 동체를 구성한다. 진형주 작가의 작품에는 이러한 다양한 자아의 모습들이 하나의 자아를 이루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의 진지한 자아 탐구의 과정은 오늘날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놀이, 게임, 사건 위주의 작품들 속에서 또 다른 감상의 폭을 보여주고 있다. --차예지(기획)

박제성

김도명의 작업은 ‘시간과 기억’이라는 불가분의 개념. 즉 ‘기억을 통하여 시간을 인식한다’는 명제에 대해 작가 자신의 경험적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작가에게 있어서 기억이란 단순히 직선적 과거의 퇴적물중 일부가 아니라 자신을 존재케하는 중요한 단서이다. 그는 수많은 기억의 편린속에 가려지지 않는 절대적인 ‘경험’을 토담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대변함으로서 작가의 존재-과거로부터의-를 설명하고자 하였다.그에게 있어서 토담이란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자신을 지켜주는 자양분의 저장고이다.가장 근본적이고 많은 기억들을 함축할 수 있으리라 믿어지는 흙이라는 매체는 작가에게 있어서 단순히 과거를 회상케 하는 채워진 그릇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새로운 기운을 얻고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이라는 의문을 해석해서 채워야만 하는 비워진 그릇으로 남는다.그러한 관점에서 그의 새로운 작업 ‘흙으로부터 피어나는 새싹’(편의상)은 작가의 진솔한 탐구자세가 엿 보인다.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방을 들어서면 후끈한 온기와 생명의 냄새에 의해 무언가 진행되고 있음을 느낀다. 가냘프게 피어나는 새싹의 몸부림은 우리 인간의 군상들처럼 현재의 삶에 기억을 더하여 시간을 만들고 그 시간을 바탕으로 현재를 살아가듯, 반복되어지는 시간과 기억의 연속선상에서 새로운 기억을 잉태하고 그에 따른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을 분만하는 끝없는 변증법적 작업이 사뭇, 시작을 알 수 없는 태초의 탄생과도 같은 느낌을 발하게 한다. 작가는 여기서 기억과 시간의 변증법적 관계뿐 만 아니라 ‘시간대 공간 개념’에 대한 조심스러운 시도를 보여준다.김도명의 작업 중 ‘원과 퇴적된 쇠 봉’은 그의 시간대 공간 개념‘에 대한 시각적 재현이다.분절되고 퇴적된 쇠 봉들은 기억의 편린으로서- 이것은 작가의 경험적 시간을 의미하며 현재를 가능케 한 과거이다. 그러한 작가의 기억들은 시공간을 넘어 작가자신으로서의 커다란 원으로 재현된다. 김도명의 이러한 시간, 기억, 공간에 대한 탐구는 꾸준한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CD기둥’이라는 작업을 통해서도 그는 4333개라는 CD를 쌓음으로서 명쾌히 이러한 논제에 대한 집합적인 해석을 보여주었다.김도명의 최근작 ‘흙으로부터 피어나는 새싹’(편의상)이 발표되기 전까지 그의 앞선 작업들은 기억의 편린처럼 현재를 지탱케 하는 과거와 같이 꾸준히 기억과 시간을 반복하고 있음을 간과 할 수없다.김도명의 작품들은 삶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소박하고 순수한 표현이 깃들여져 있다.진솔한 삶의 자세와 그에 상응하는 매체의 선별은 경이로운 감마저 들게 한다.그러나 작가 김도명은 설치 아닌 조각 작품을 보여줌으로서 작가로서의 상상력에 스스로가 보이지 않는 한계를 긋는 듯 하여 아쉬운 감이 남는다.산문처럼 이야기하듯 풀어나가는 작가의 회화작업이나 설치작업들은 그가 겪은 경험처럼 부드럽게 관객들에게 흡착되고 있음을 느끼지만 그의 견고하고 짜임새 있어 다부지기까지 한 조각 작품들은 딱딱한 논문처럼 그의 삶에서 튕겨나가는 듯하여 아쉽다.사고의 흐름이 고여, 허구나 괴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유행성 작가로서가 아니라, 생명력 있는 작가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박제성 2002.4월

신영미 - 무한히 진동하는 생명의 흔적

예전, 김도명의 식물설치작업은 아직도 나에게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문을 열고 들어선 전시장은 그 하나로 아름답게 고립된 작가의 정원처럼, 녹슨 철가루 사이를 비집고 자란 식물들이 내뿜는 향기는 거칠지만 전시장 가득히 기분좋은 현기증을 일으켰고, 은밀하고 엄격한 자연의 법칙을 엿보는 인간의 마음으로 하여금 숙연함마저 들게 했었다.지금. 또다시 그의 작업을 마주하면서 계속해서 이어온 그의 작업방식이 정직하게 거둔 수확물을 대하는 농부처럼 인내심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 그의 노고만이 아니라 작업과 소통방식, 현시대 패러다임과 예술의 존재 의미등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는 점. 훨씬 세련되게 그리고 좀 더 치밀하게 다듬고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이번 전시에서 김도명은 과거의 설치물을 각각의 오브제로 대신하면서 전체의 메시지를 구성한다.‘흙에 씨앗을 뿌리고 거름과 물을 주고 하루에 한번씩 광합성을 시킨다’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원초적인 방법이 김도명 작업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다만 그것을 담아냄에 있어서 치밀하게 계산된 수치에 의해 화석과 같이 파여진 겹겹의 종이층들이 단순한 조형적인 재미만이 아니라 편집증에 가까운 몰두와 열정으로, 그만의 방식으로 진지하게 말을 건내고 있다.언어에는 권력이 스며있다고 롤랑바르트는 말했다. 책이란, 신문이란 텍스트의 기호로써 인간에게 조직적인 그물망으로 매트릭스적인 허상을 만들어내고 절대 진리를 만듦으로써 역사속에서 혹은 학문이라는 뉴스라는 이름으로 인간정신을 옭아맨다. 근대과학의 태동이래 구조주의적 이분법 사고가 지배적인 방식이 되면서 그것은 물질과 정신, 과학과 자연을 확연히 구분하며 언어 재현 가능성을 믿는 낙관론에 빠지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결국 인간 정신의 자유로움이란 기계론적이고 구조적인 사고방식에 의존하게 되고만 것이다.이에 작가 김도명은 언어의 권력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분법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한다.또한 그 한켠으로 유머러스한 농담을 건내며 단어 게임을 즐긴다.씨앗이 자라고 있는 페이지에서 취하는 단어는 사실 관객이 집중하여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지나가 버릴수도 있을만큼 숨은그림찾기 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구조을 해체한다.예를 들어, 가장 진실에 가까운, 하지만 잘못된 진실을 전하는 수단이기도 하는 <신문>에서는 맘에 드는 단어만 남긴채 몇 글자는 지워버려 title기사를 조작시켜 버린다. <옥편>.에서는 나‘아我’와 싹 ‘아芽’를 찾아내어 동음이의어로 연결시킨다던지, 영어사전에서는 “real" 이라는 단어를 취한다.각각의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그것이 문장화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메시지를 갖는다. 또한 그 구조는 무한하며, 복수 언어적이다. 다양한 텍스트로써 단선적인 논리와 의미만을 제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이것이 책이므로, 당연히 믿게 만드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한다.또한 작가는 자연과 생명에 대해 예전부터 아주 긴 시간동안 작업을 해 오고 있다.자연은 언제부터인가 생명이나 영성을 지닌 신비스런 존재가 아니라 과학문명의 진보를 위해 인간의 손아귀에 붙잡힌 실험재료가 됨으로써 파괴되고 종속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의 작업은 처음부터 생명을 다룬다는 점(생명을 심고 돌본다는 점). 그 다양성과 생명의 감수성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에코페미니즘의 성향을 닮아있다. 인간자연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인간이 만들어낸 이분법적인 구조속에서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끝없이 순환하는 것이라는 철학이 담겨있다.결국 인간이 만들어놓은 여러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자연은 물론 인간 스스로도 모순에 빠지고 만 것이다. 이러한 현 시대를 반영하고 역사를 직관하는 작가로써 김도명은 그 소임을 그만의 독특하고 예민한 감수성으로 오랜시간 치열하게 보여주고 있다.주체/객체의 철저한 이분법에 따른 절대적인 객관성이 아니라 개인적 느낌에 집중하여 주객을 나누지 않고 다름을 존중하고 전체를 이해하는 그의 사고방식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키워나가야 할 이시대의 키워드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생명에 관한 작가의 작업에 관심과 애정을 보낸다. --신영미(작가)

수상

  • 2007년 대한민국 공예 사진대전 / 코엑스 / 서울
  • 2004년 현대판화 공모전 / 한전 플라자 / 서울
  • 2002년 송은미술 대상전 / 공평아트센타 / 서울
  • 2001년 창작미술제 /서울 시립미술관 / 서울
  • 2000년 전국 대학미전(특선) / 성균관대 / 서울
  • 2000년동아미술제(특선) / 국립 현대 미술관 / 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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